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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판검사를 하다가 적절한 시점에 나와 변호사를 하거나, 로펌에서 일하다가 독립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변호사 사무실을 열면 되었으니 개업변이란 일종의 종착역 같은 것이어서 커리어를 어떻게 설계할까에 대한 고민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시절을 지나온 변호사님들은 부인하실 수 있겠지만, 지금의 변호사들에게는 개업이란 것이 응당 해야 할 것이라기 보다는 높은 벽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개업 외에도 사기업, 공공기관 등 다양한 진로들이 있고, 심지어는 변호사 자격증만 가지고 법률과 상관 없는 일을 하는 경우도 꽤 생기고 있기 때문에 예전 선배 변호사님들에 비해서는 진로에 관한 고민이 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과거에 비해 옵션은 많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 많은 옵션들 중에 마음에 드는 진로를 선택한다기 보다는 여러 곳에 이력서를 집어넣고 면접을 보러 다니며 자신의 선택보다는 타인의 선택에 진로를 선택 당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면서, 변호사들의 진로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진로 고민 = "어떻게 하면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될까"에 대한 고민?
진로 고민이란 변호사로서 앞으로의 커리어를 설계하는 데 대한 고민으로, 결국은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나의 취향/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여 최고의 성과(그것이 무엇이든)를 이끌어내는 과정, 대부분의 경우 소위 "어떻게 하면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될까"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변호사가 되어 처음 취직을 할 때, 또 이직을 할 때, 대부분은 한 개에서 수 개 정도의 선택지가 주어지고, 그 중에서 나름 앞으로의 시장 상황을 예측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연봉, 업무환경, 분야, 직종 등)을 고려하여 어떻게 하면 잘 나가는, 성공하는 변호사가 될까 고민하게 된다. 연수원 최상위권이나 탑 로스쿨 최상위권 학생, 기타 금수저라면 보통 법원, 검찰, 대형로펌 중에서 진로를 고민하게 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또 차선의 선택지 중에 진로를 결정하는 것, 그것도 아니라면 이력서를 수십장 씩 쓰고 붙여주는 곳을 가는 것이 현실이다. 진로의 선택이 가능한 변호사들은 나름의 판단으로 나중에 잘 나갈 수 있는 곳을, 가능하지 않은 변호사들도 일단은 붙여주는 곳에 간 다음 그 상황에서 또 나름의 진로를 모색하는 전략을 취하게 된다. 그 전략적 사고의 배경에는 어떻게 하면 내가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이기적인 사고가 깔려 있다(여기서 '이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나쁜 의미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다는 의미에서 쓴 것임).
하지만 이기적인 사고에 바탕을 둔 선택이 꼭 자신에게 실제로 득이 되는 결과를 가져다주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기적인 사고는 "내가 이 변호사 업계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잘 나가야지" 하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능력과는 상관이 없이 남들에 의해 잘 나간다고 여겨지는 목표를 향해 진로를 설정하게 되는 경향이 생긴다. 예를 들면, 대법관이라든가, 특정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인 대형펌 변호사, 돈을 아주 많이 버는 개업변, 국제 무대를 누비고 다니는 국제중재 전문가 등등이 그것이다. 여기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첫째는 자신의 취향/능력의 고려 없이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선택하게 되는 것, 둘째는 변호사로 활동하게 되는 2-30년 동안 시장이 변하면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게 변하게 되는 것이다. 한창 일을 하다 몇년 후 마주치는 현실은 자기가 처음 생각했던 모습과 많이 다른 경우가 허다하고, 그제서야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하면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보다는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이타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진로 설계에 더 맞는 전략이며, 이것이 역설적으로 후에 "더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변호사인지 아닌지와 상관 없이 모든 커리어의 선택에 적용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법으로 진로를 선택했으면 좋겠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자기가 되고 싶은 변호사의 모델이 희미하게나마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힙겹게 나아가지만 대부분은 목적 달성에 실패한다. 실패하는 이유는 우선 내가 하고자 하는 것과 나의 경험/능력/취향이 맞지 않고, 더 크게는 시장이 내가 그것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이 원치 않는다는 것은, 내가 지금 롤 모델로 하고 있는 그 변호사가 되는 것을 시장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시장의 흐름을 거역하는 것은 매우매우 힘들다. 시장의 변화 방향과 맞지 않는 커리어를 설계하려면 엄청난 노력을 통해 나를 그 모습에 맞추어야 하고 또 그 모습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수많은 뛰어난 경쟁자들이 있어서 더 힘들게 된다. 대형펌에서 파트너가 되는 것이 대표적일 것이다. 현재 한국의 법률시장의 흐름은 대형펌 파트너변호사들이 점점 돈을 못 버는 구조로 변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물론 돈이 다가 아님은 잘 알고 있다), 수많은 어쏘 변호사들이 대형펌 파트너가 되기 위해 피터지게 경쟁하고 있다.
그러면 이런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되기 위한 사고에서 한 발 물러서서, 정말 이타적으로 생각을 해 보자.
"내가 가진 능력과 인맥, 경험, 취향을 가지고 이 사회에, 이 세상에, 이 시점에 제일 많이 기여하려면 뭘 해야 할 것인가?"
"내가 뭘 하면 세상에 제일 도움이 될까?"
"세상이 나에게 뭘 하도록 시키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진로를 더 잘 설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것 같지만 막상 생각해보면 매우 다르다. 이런 시각으로 진로를 선택하면, 우선 시장의 변화를 거슬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꾸역꾸역 하게 되는 일이 방지되고, 좀 더 시장의 흐름을 탈 수 있는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이런 시각은 생각의 중심에 내가 있지 않고 남(잠재 고객)과 시장이 있기 때문에, 계산적으로 보더라도 숨어 있는 수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수요를 찾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된다. 나아가, 세상이 나에게 원하는 것을 한다는 것은 성공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매우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예전에 메가스터디 손주은 대표의 강의를 본 적이 있다. 손주은 대표는 메가스터디를 시작하기 전에 아주 뛰어난 학원 강사였는데, 그가 그냥 계속 학원 강의를 했다면 아마 고생고생 하면서 지금쯤 대성학원 같은 아주 큰 학원의 최고 유명 강사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강남의 아이들이 사교육을 받는 동안 그와 같은 교육을 받지 못해 소외되어 있는 시골의 아이들이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는 것은 불평등하다고 생각했고, 그 시골의 아이들에게 강남의 아이들과 같은 수준의 강의를 제공하는 방법은 인터넷 강의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인터넷 강의 사업을 하는 것이 세상에 가장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메가스터디는 현재 연 수천억원의 매출을 내고 있다.
변호사의 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하면 세상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면, 새로운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